“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게, 그게 법이잖아요.”
《재심》은 2017년에 개봉한 실화 기반 영화로,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소년과, 그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운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리며, 사법 정의의 본질과 회복의 의미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정우(변호사 이중석 역)와 강하늘(소년 조현우 역)의 열연이 더해져, 단순한 법정 드라마를 넘어 인간적인 울림과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전하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살인범’이 되어버린 15살 소년, 조현우의 현실
영화의 시작은 15살 소년 조현우가 살인 누명을 쓰고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건은 실제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당시 경찰은 조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조현우가 범인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소년은 사건 당일 친구의 오토바이를 빌려 탔다가 우연히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고, 단순한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되어 폭력적인 강압 수사와 회유 끝에 자백하게 됩니다. 부모의 보호 없이 진행된 조사, 형식적인 국선 변호사, 조작된 증거와 자백은 그를 실제 범인이 아닌 ‘법적 범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수갑을 차고 조사를 받는 미성년자의 불안한 눈빛, 조사관의 거짓 회유, 언론 보도를 통해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현실. 이 모든 과정은 ‘누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공정한 사법 시스템 안에 살고 있는가?”
변호사 이중석, 정의보다 사람을 선택하다
정우가 연기한 변호사 이중석은 초반에는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요구하고, 돈이 되는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현실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 요청을 받게 되면서, 그는 점차 진짜 ‘사람’을 위한 변호를 고민하게 됩니다.
처음엔 단순한 ‘기획 소송’으로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조현우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사건 기록을 접하며 그는 점점 사명감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왜 아무도 이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을까?” “진실이 있는데 왜 외면당했을까?” “법은 정말 진실을 위한 것인가?”
이중석은 비리 경찰과 싸우고, 증거를 수집하며, 법이 외면한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단지 법을 아는 사람에서, 정의를 실행하는 사람으로 변모합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법조인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변호사는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돈을 지불한 의뢰인만이 아니라, 사회 속 약자, 억울한 피해자,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가를 이 영화는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정의는 늦게 오더라도,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
《재심》의 후반부는 본격적인 법정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이중석은 수사 당시 사용된 증거가 허위였음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들과 싸우고, 조작된 자백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듭니다. 또한, 진범의 존재와 자백을 확보하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수년간 유지된 판결을 쉽게 뒤집지 않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자주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어려운 시스템, 사과하지 않는 기관들, 진실보다 체면을 우선시하는 구조. 그럼에도 영화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변호사와 가족, 그리고 조현우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실을 외쳤기 때문에, 끝내 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조현우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한 사건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과 정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비록 늦었고, 완전하지 않더라도, 정의는 끝내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순간입니다.
결론: 《재심》은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재심》은 단지 한 소년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의 취약함과, 현실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지 보여주는 현실 고발 영화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변호사, 싸움을 멈추지 않은 가족, 끝까지 진실을 외친 소년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법이 모든 진실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진실이 법을 움직일 수는 있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정의의 이정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또 다른 ‘재심’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