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단지 소설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위로, 누군가에게는 인간을 다시 이해하게 만드는 사회적 청진기 같은 책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치료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훈련을 평생 반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한 명의 독자이기 전에 ‘사람을 돌보는 전문가’로서 마음, 삶, 상처를 진단하게 만든 특별한 문학적 경험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불편한 편의점』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가 아닌 사람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서울 청파동의 작은 편의점을 무대로, 노숙인 ‘독고’씨를 중심으로 다양한 손님과 직원들의 삶이 펼쳐지는데, 그 안에는 자극적인 반전보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진실이 녹아 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와 마주할 때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증상뿐 아니라, 살아온 방식, 습관, 감정, 사고를 듣는 것이 곧 진료의 시작입니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짧은 사연은, 병원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의 “보이지 않는 통증”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은 편의점에서 소소한 대화와 익명의 위로를 통해 병원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마음의 증상’을 치유받습니다. 이 소설은 말합니다. 진짜 치유는 진단명보다, 사람 자체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독고 씨,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야말로 진짜 전문가
『불편한 편의점』의 핵심 인물 ‘독고’는 노숙인이었지만, 밤샘 근무를 맡은 뒤 점차 손님들의 일상을 세심히 살핍니다. 그는 고객에게 약을 권하거나, 말을 걸거나, 가끔은 조용히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은 상대방의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입니다.
의사는 ‘진단’과 ‘결정’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은 관찰하고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이들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은 의사’의 조건이듯, 독고 씨도 말 없는 관찰을 통해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합니다.
또한 그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게임만 하는 사람, 말없이 울다 나가는 손님… 이 모두를 평등하게 맞이하는 그의 태도는 의사의 윤리와도 닮아 있습니다.
치유는 공간이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
의사들은 때때로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원 말고, 어디서든 치유가 가능할까요?” 그 질문에 『불편한 편의점』은 조용히 대답합니다. “네, 치유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이 소설의 편의점은 깨끗하거나 고급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기억해주는 공간,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주는 공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의료 현장에서도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한 치유로 작용합니다. 『불편한 편의점』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그 작은 연결들이 모여 마음을 치료해 갑니다.
결론: 이 소설은 마음을 진단하는 문학이다
『불편한 편의점』은 일상의 작고 느린 순간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짜 병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무관심, 단절, 과로, 외로움. 이런 증상은 병명도 없고, 약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름 없이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병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습니다.
의료진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읽는다’기보다 누군가의 삶을 진찰하고 위로받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불편한 편의점』은 인간을 진단하고, 인간으로 처방하는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진료실이었습니다.